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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제중원의 설립 과정
답변 :갑신정변의 와중에 심한 자상으로 생명이 위태롭게 된 민영익을 치료함으로써 왕실의 신임을 얻게 된 알렌은 여러 가지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우선 의사로서 국왕인 고종과 민비의 시의로 임명되었다. 또한 왕의 어머니인 조대비를 치료하기 위해 그 거처 안까지 들어간 것 역시 외국인, 그것도 남자 의사로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처럼 조정의 신임을 얻고 자신에 대해 우호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자 알렌은 자신감을 얻고 해외 선교에 나섰던 자신의 뜻을 펼칠 방안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885년 1월 22일 미국 공사관 대리공사인 폴크를 통해 서양식 병원의 설립을 다음과 같이 조선정부에 건의하였다.

“조선정부가 만약 병원을 건설한다면, 저는 마땅히 최고책임자의 역할을 다할 것이며, 귀 정부가 제공하는 급여는 한 푼도 받지 않겠습니다. 단지 몇 가지 요구되는 일이 있습니다. 첫째, 서울에 공기 좋고 청결한 가옥 한 채. 둘째, 병원 운용에 필요한 등촉 및 연료, 보조원, 간호사, 하인 등의 월급, 가난한 환자들에게 제공하기 위한 음식 등. 셋째, 각종 약재비 삼백원 정도 등. 조선정부가 이것들에 대해 허락할 뜻이 있다면, 저는 또한 의사 1명을 자비로 초청하겠으며, 6개월 후에는 이 병원에 근무하게 될 것입니다. 저와 그 의사는 조선정부로부터 급여를 받지 않겠습니다. 급여를 받지 않는 까닭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에는 백성들을 돕기 위해 설립한 병원사(病院社, benevolent society)라는 조직이 있는데, 저와 그 의사는 그 조직에서 급여를 받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병원은 청나라의 베이징, 톈진, 상하이, 광둥 등과 다른 나라에도 많이 있습니다. 그 중 두 개의 병원은 리훙장 자신이 스스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서울에 병원을 건설하는 것이므로 이 병원은 조선정부의 병원이며, 백성들은 병이 생기면 삼가 몸을 살필 수 있으니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일에 조선의 대군주께서 만약 동의해주신다면 흔쾌히 처리될 거라 생각합니다.”(알렌의 「조선정부 경중건설병원절론」 중에서)

알렌은 이 건의문에서 조선정부가 병원 건물과 운영에 필요한 경비를 부담하면, 자신은 미국의 자선단체에서 급여와 생활비를 지원 받으며 무보수로 일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알렌의 병원설립계획은 당시 조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묄렌도르프의 방해를 받았다. 이러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고종의 계속적인 호의와 지지에 힘입어 병원설립은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알렌 스스로도 병원설립안이 예상보다 훨씬 신속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서양식 병원을 원했던 조선정부는 병원설립안의 협의를 위해 1월 27일 관리 두 사람을 알렌에게 보냈다.

그리고 2월 16일에 병원설립을 담당할 조선 측 대표로 김윤식을 임명하였다. 2월 18일 김윤식은 미국공사관을 방문하여 병원 건물로 현재의 헌법재판소 구내 북서쪽 부분인 재동 35번지에 해당하는 홍영식의 집이 선정되었다고 전해주었다.

이어서 1885년 4월 3일 외아문에서는 새로운 병원의 개원 사실을 공포했다. 포고문은 북부 재동에 미국인 의사가 진료하는 병원을 개설하였고, 진료비에 해당하는 약값이 무료이니 누구나 진료를 받으라는 내용이었다.

알렌은 미국 선교부에 필요한 약품과 의료 기구를 주문했고 4월 9일부터 환자를 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조선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은 특별한 개원 의식 없이 4월 10일 개원했다.

고종은 1885년 4월 12일 병원의 명칭을 ‘널리 은혜를 베푸는 집’이란 뜻으로 ‘광혜원(廣惠院, House of Extended Grace)이라 붙였다. 하지만 4월 26일 ‘사람을 구하는 집’이란 의미의 ‘제중원(濟衆院, House of Universal Helpfulness)’으로 개칭하였다.